언론보도
[매일일보] 김재원 코스포 의장 “푼 규제보다 생긴 규제 더 많아…철폐도 국회 KPI로 삼아야”

김재원 코스포 의장이 지난 18일 기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코스포 제공
“국회의 성과가 법을 만드는 데만 맞춰져 있다면 규제를 푸는 일에도 성과지표(KPI)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푼 규제보다 새로 생긴 규제가 더 많습니다.”
김재원 코리아스타트업포럼(코스포) 의장은 스타트업 생태계의 다음 10년을 위해 규제 혁신과 시장 확대, 회수시장 보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창업기업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역할을 넘어 혁신 제품을 처음 구매하고, 상장 이후에도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자본의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AI는 국경 없이 오는데…규제에 갇힌 국내 스타트업
코스포 출범 이후 지난 10년은 모바일·플랫폼 중심 디지털 전환과 기존 산업 간 충돌을 조율해온 시기였다.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 때마다 기존 사업자와 이해관계 충돌이 규제로 이어졌고, 이를 사회가 받아들이는 과정이 반복됐다.
문제는 앞으로의 10년은 경쟁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는 점이다. 챗GPT, 제미나이, 클로드 등 해외 AI 서비스가 국경 없이 국내 시장에 진입하면서, 국내 스타트업은 해외 진출 이전부터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는 처지에 놓였다. 국내 시장을 방어선으로 삼아 경쟁력을 키운 뒤 해외로 나가는 과거의 성장 경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김 의장은 “과거 플랫폼 기업은 국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국내 상황을 이해해야 했지만 AI 기업은 해외 서비스를 국내 이용자가 곧바로 사용한다”며 “글로벌로 나가기 전에 국내 시장에서도 스타트업이 설 자리가 부족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0년이 정부의 규제를 풀어 시장을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10년은 AI 산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부와 함께 협력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며 “시장을 한번 빼앗기면 시장이 없는 곳의 규제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이 체감하는 규제 문제는 개별 규정보다, 새 기술·서비스를 기존 산업의 틀로 재단하는 구조 자체에 있다는 게 김 의장의 진단이다. 대기업은 규제 대응 조직과 경험을 갖췄지만, 기술개발과 시장 검증에 집중해야 할 스타트업은 자신에게 어떤 규제가 적용되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스타트업은 기술개발과 시장 혁신에 집중하기도 벅찬데 자신이 어떤 규제를 위반할 수 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며 “창업과 동시에 잠재적 범죄자처럼 시작해야 하는 사회에서 누가 대표가 되려고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개인정보 보호와 데이터 활용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개인정보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데이터와 지식재산권을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 기준이 복잡하고 불명확해 혁신이 늦어지거나 사업을 시작한 뒤 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김 의장은 “국회의 KPI는 입법이다 보니 법과 규제가 계속 만들어진다”며 “국회의원들이 법을 만드는 만큼 이미 만들어진 규제를 푸는 일도 성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코스포는 규제 개선의 첫 과제로 규제 샌드박스의 실효성을 직접 평가할 계획이다. 규제 샌드박스가 혁신 서비스를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식 제도 개선으로 이어졌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김재원 코스포 의장이 지난 18일 제주도에서 열린 ‘스타트업X제주 혁신 토크’에 참여했다. 사진=코스포 제공
정부는 ‘첫 고객’, 코스닥엔 기관자금…성장 사다리 이어야
규제를 푼 다음 단계는 실제 시장을 만드는 일이라는 게 김 의장의 주장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스타트업 정책이 자금·프로그램 지원에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정부와 공공기관이 혁신기업의 ‘첫 번째 고객’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가 계속 제품을 사달라는 의미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공공이 신제품·서비스를 먼저 써보고 피드백을 주면, 스타트업은 이를 레퍼런스 삼아 민간·해외시장으로 나가야 한다는 논리다.
김 의장은 “스타트업이 0에서 1을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에서 선택돼야 한다”며 “정부의 첫 구매 실적은 해외 고객에게 한국의 정부나 공공기관이 사용한 서비스라고 설명할 수 있는 세일즈 무기가 된다”고 말했다.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엘리스그룹의 사례도 근거로 들었다. 엘리스그룹은 정부의 대형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라우드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민간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김 의장은 “정부 사업에서 확보한 레퍼런스가 민간 매출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정부의 구매가 민간시장 확대로 이어지고, 기업의 성장이 다시 세금으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초기 시장에 진입한 기업이 계속 성장하려면 투자금이 회수돼 다시 생태계로 흐르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상장하는 순간 정책적 관심과 지원이 끊기는 현행 구조가 문제라는 것이다. 모태펀드·정책금융은 비상장 단계에만 집중되고, 상장 기업은 이미 성장을 마친 것으로 간주된다는 설명이다.
김 의장은 “상장은 기업이 성숙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본을 끌어오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라며 “상장 이후에도 대기업 반열에 오르기 전까지는 성장 단계에 있는 기업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스닥이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아 단기 주가와 여론 변화에 민감하다는 점도 회수시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장기 성장성을 보고 투자하는 기관자금이 유입돼야 상장 이후에도 안정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다.
김 의장은 “비상장시장에 자금을 계속 공급하면서 회수 통로를 열지 않으면 거품만 커질 수 있다”며 “코스닥의 부실을 모두 정리한 뒤 기관자금을 넣겠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정리하는 사이 시장이 먼저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코스닥에 장기 투자할 기관자금을 유입하는 동시에 부실기업을 정리하는 작업을 병렬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상장 이후와 인수합병(M&A)까지 포괄해 자본이 회수되고 다시 초기 스타트업으로 흘러가는 마지막 단계를 정부가 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