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시사저널이코노미] 빈집 숙소에 7년 걸린 다자요···이번엔 제주 마을 통째로 바꾼다
제주 한경면 조수리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돌담 사이로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집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굳게 닫힌 문 너머로는 사람이 살았던 흔적만 남아 있었다. 얼핏 철거를 기다리는 폐가처럼 보였지만 빈집 재생 스타트업 다자요의 생각은 달랐다. 빈집을 다시 숙소와 사무실, 주거공간으로 바꿔 사람을 마을로 불러들이겠다는 것이다.
지난 17일 찾은 조수리는 846명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다자요가 파악한 빈집은 현재 17채다. 현장을 돌아볼 때마다 새로운 빈집이 발견되면서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다자요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과 함께 빈집 10채를 재생해 스타트업 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6채는 숙소로 만들고 이 중 3채는 셀럽과 협업해 각자의 취향을 담은 공간으로 꾸민다. 2채는 창업자 등이 실제 거주하는 정주주택으로 만들고 카페형 오피스와 세탁방 등 생활시설을 갖춘 조수탕도 조성한다.
빈집 각각을 따로 운영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카페형 오피스를 사용하는 창업자가 마을 숙소에 머물고 숙소에서 발생하는 침구류는 세탁방을 이용하는 식이다. 시설을 운영하는 창업자는 다시 마을에 정착하는 식으로 지역 안에서 수요가 순환하는 구조다.
남성준 다자요 대표는 “정부가 만든 유휴공간 재생시설도 운영 주체가 사라지면서 다시 빈 공간이 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처음부터 수요를 만들면서 민간이 직접 들어가 재생해보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자요는 10년 이상 방치된 농어촌 빈집을 장기 무상임대하거나 매입한 뒤 숙박시설로 재생해 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현재 직접 운영하는 공간은 11채로 누적 운영일수는 7218일, 회사가 집계한 누적 관계인구는 3만6090명이다.
이날 찾은 다자요의 숙소에서는 낡은 제주 주택의 골격을 살리면서 내부를 현대적인 생활공간으로 바꾼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룸을 비롯해 LG전자, 노루페인트, 코베아 등도 공간 조성에 참여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일회성 팝업스토어 대신 숙박객이 실제 제품을 장기간 경험하는 쇼룸으로 활용할 수 있다.
셀럽과의 협업도 사람을 지방으로 불러들이는 장치다. 배우 류승룡과 함께 만든 하천바람집의 최근 3년 평균 가동률은 63.1%다. 다자요가 비교 기준으로 제시한 제주 민박 평균 32%의 1.97배다. 다자요는 권유리, 진선규 등으로 협업 대상을 넓혀 한류 팬들이 지역에 머물도록 하는 K-컬처 스테이 모델도 구상하고 있다.
◇7년 넘게 이어진 규제 실증···“제도 생겼지만 기업은 비용 떠안아”
다자요의 빈집 재생 사업은 2017년 시작됐지만 제도는 사업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당시에는 빈집을 장기간 임차해 숙박시설로 운영할 법적 근거가 없어 2019년 농어촌정비법 위반 문제로 사업이 중단됐다.
이후 정부 중재를 거쳐 2020년 ICT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받으며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실증 초기에는 5개 시군구에서 최대 50채, 연간 300일 이내라는 조건이 붙었다. 기존에 다자요가 재생했던 빈집에는 특례가 적용되지 않아 새 빈집을 확보하고 다시 재생해야 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남 대표는 “막았으면 빨리 풀어줬어야 하는데 실증이 시작될 때는 이미 회사가 만신창이가 됐다”며 “만들어 놓은 공간에서는 영업을 못 하고 유지비는 계속 들어가는데 다시 빈집을 구하고 재생해야 했다”고 말했다.
조건이 본격적으로 완화된 것은 2024년이다. 실증특례가 연장되면서 연간 영업 가능 일수가 300일에서 365일로 늘었고, 무상임대뿐 아니라 빈집 매입이 허용됐다. 사업 가능 지역도 전국으로 확대됐다. 다자요는 현재 임시허가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농어촌정비법에 ‘빈집 재생 민박업’을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빈집 숙박이 제도권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남 대표는 그 과정에서 선도 기업이 부담한 시간과 비용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사업을 시작한 2017년부터 제도가 정비되기까지 7년 넘게 규제와 실증특례 조건에 묶이면서 사업 확장과 투자 유치에 제약을 받았다는 것이다.
남성준 대표는 “기업들이 희생해 실증하고 제도를 만들면 그 성과는 국가 전체가 가져간다”며 “실증 과정에서 기업이 부담한 비용도 연구개발처럼 일정 부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자요의 실험은 이제 빈집 한 채를 숙소로 바꾸는 데서 마을 전체로 확장되고 있다. 조수리에서는 관광객뿐 아니라 창업가를 불러들여 머물고 일하고 소비하는 수요를 만들고, 일부는 실제 정착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남 대표는 “운영이 먼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처음부터 수요를 창출하면서 민간이 직접 들어가 마을을 재생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