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매일일보] “빈집에 불만 켜져도 좋아”…제주 마을 깨운 ‘다자요’, 규제는 7년째
“빈집으로 두는 것보다 사람이 오는 게 좋지. 불만 켜져도 얼마나 좋아요.”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다자요가 빈집을 고쳐 외지인을 불러들이는 일을 반겼다. 사람이 떠난 집은 쥐와 고양이의 차지가 되지만, 낡은 집을 고치면 다시 불이 켜지고 사람의 발길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조수리는 1610년 형성된 400년 역사의 마을이다. 현재 406가구, 846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마을 곳곳에는 17채의 빈집이 남아 있다. 공중목욕탕과 세탁방, 공유오피스도 없다. 다자요는 이곳의 빈집 10채를 숙소와 창업공간, 정주주택으로 바꾸는 ‘스타트업 빌리지’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류승룡·권유리도 동참…빈집 10채로 되살리는 제주마을
남성준 다자요 대표는 고향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다 돌아온 뒤 오래된 초가와 돌담을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철거해야 할 낡은 집이 아니라 제주만의 생활과 문화를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본 것이다.
다자요는 소유주에게 빈집을 10년 이상 무상으로 빌려 수리한 뒤 숙박시설로 운영한다. 방치된 집을 되살리는 동시에 관광객을 마을 안으로 끌어들여 주변 식당과 카페, 지역 상품 소비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배우 류승룡과 가수 권유리도 다자요의 빈집 재생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름과 얼굴만 빌려주는 광고모델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과 생활방식을 공간에 담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참여한다. 별도의 모델료와 계약금은 없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류승룡은 다자요가 단순히 숙박시설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버려진 집을 되살려 사람들과 나누고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가치에 공감해 2019년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했다. 그는 “버려지는 집을 다시 살려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고, 그 공간이 마을에도 이롭게 쓰인다는 점이 좋았다”며 “숙소가 마을 한가운데 있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다자요는 개별 숙소의 운영을 넘어 마을에 필요한 기능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첫 무대는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다. 2028년까지 총사업비 23억원을 투입해 마을에 남은 빈집 17채 가운데 10채를 재생할 계획이다. 이 중 6채는 단기 숙박과 한 달 살기, 워케이션 공간으로 만들고 2채는 마을에서 사업을 운영할 이주 창업자의 주택으로 활용한다. 나머지 2채에는 사업자등록이 가능한 카페형 오피스와 세탁방·목욕탕·카페를 결합한 ‘조수탕’이 들어선다.
각각의 공간은 따로 운영되지 않는다. 오피스는 스타트업과 창업자를 불러들이고, 이들이 숙소에 머물며 마을 식당과 카페를 이용하도록 한다. 숙소에서 나오는 세탁물은 조수탕의 고정 매출로 연결하고, 오피스와 조수탕을 운영하는 창업자는 정주주택에 살며 마을 구성원으로 남는다. 관광객이 잠시 묵고 떠나는 숙소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숙박과 일자리, 생활시설, 주거를 하나의 구조로 묶어 사람이 계속 머무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법에 없다는 이유로 매출 ‘0’ 32개월…실증 비용은 기업 몫
이 선순환을 움직이는 출발점은 빈집을 재생한 숙소다. 숙박객이 꾸준히 찾아와야 마을에 소비가 발생하고 조수탕과 오피스, 정주주택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그러나 다자요가 빈집을 숙소로 운영하는 사업은 현행 제도에서 여전히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
농어촌민박은 해당 주택에 거주하는 주민이 운영해야 한다. 현행 농어촌정비법은 주민이 자신의 주택에서 민박을 운영하는 방식만 규정하고 있어, 법인이 빈집을 장기간 빌려 숙박시설로 운영하는 다자요의 사업모델은 제도권 밖에 놓였다. 법에서 명시적으로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형태를 허용하는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운영이 막혔다. 기존 법이 예상하지 못한 허용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제도 공백에 따른 비용을 기업이 떠안게 됐다. 마을을 되살리는 사업의 핵심 수익모델이 규제에 가로막힌 셈이다.
다자요는 2019년 6월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해 2020년 9월 실증특례를 받았다. 그러나 신청과 심사를 기다리는 15개월 동안 매출이 끊겼고, 특례 승인 뒤에도 기존에 재생한 숙소에는 허가가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새로운 빈집을 확보해 다시 수리한 뒤 첫 매출이 발생하기까지 17개월이 더 걸렸다. 규제로 인해 매출이 발생하지 않은 기간만 총 32개월이다.
특례 이전에 조성한 숙소 4채의 영업 중단은 2019년 6월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2채는 결국 소유주에게 돌려줬다. 실증 대상도 전국 50채로 제한돼 투자사가 자금을 투입하더라도 사업을 확장하기 어려웠다. 다자요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누적 결손금은 43억1000만원에 이르렀고 4년 연속 자본잠식 상태를 겪었다.
정부는 이제 빈집 재생 민박업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범정부 빈집관리 종합계획에는 법인의 빈집 민박 운영과 실거주 의무 예외를 허용하는 방안이 담겼다. 올해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업·농촌 정상화 과제와 중소벤처기업부의 로컬창업 정책에도 빈집 재생 민박업 제도화가 포함됐다. 다자요의 실증 결과가 정책의 근거가 된 셈이다.
농어촌민박업계가 제기해 온 안전과 기존 사업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풀어야 할 과제다. 다만 안전 여부를 운영자의 거주 여부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자요는 디지털 도어락과 비대면 관제, 에너지 관리 시스템을 활용해 숙소를 관리하고 관련 특허 2건도 보유하고 있다. 거주 의무 대신 소방·가스시설과 비상 대응, 관리 인력 등 구체적인 안전 기준을 마련하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남 대표는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빈집 재생 민박업의 가능성을 입증했고 그 결과가 국가의 제도로 이어지고 있지만, 실증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은 기업이 모두 부담했다”며 “실증 기업은 자신의 사업을 시험하는 동시에 정부의 정책 설계를 대신하는 만큼, 기존 기업이 사라지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후속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