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국경제] 암표 근절, 정부 선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예매 창이 열리고 몇 초 후, 화면엔 벌써 ‘매진’이 뜬다. 몇 달을 손꼽아 기다린 팬은 빈손으로 돌아서는데, 그 표는 곧 웃돈이 붙어 되팔린다. 매크로로 무장한 조직적 암표상이 표를 순식간에 쓸어담은 결과다. 최근 정부가 입법예고한 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은 이 부조리를 바로잡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다만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근절 대상은 ‘표를 되파는 시장’이 아니라, 매크로와 다계정으로 표를 쓸어 담는 ‘조직적 암표 행위’다. 상위 법률도 암표를 상습적·영업적 되팔이로 규정한다. 문제는 거래의 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오염시키는 행위자에게 있다.
국내 2차 거래 플랫폼도 한때 암표를 방치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국내 플랫폼이기에 국회와 정부가 문제를 짚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었고, 그 감시 아래 재판매 수량 제한, 판매가 상한, 국세청·경찰과의 데이터 공유 같은 장치가 갖춰졌다. 익명 뒤에 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역외 채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감시망 안에서 국내 플랫폼은 조직적 암표를 걸러내는 도구가 된다. 암표상이 확보한 표를 현금화하려고 매물을 올리는 순간, 실명 기반 플랫폼은 대량 등록과 비정상 패턴을 데이터로 포착한다. 실제로 이를 통해 상습 판매자를 특정하고 매크로 계정을 차단하는 일이 이뤄지고 있다. 그 길목은 없앨 게 아니라 데이터로 걸러내는 협업 지점으로 삼는 편이 낫다.
플랫폼이 장을 열었으니 잘못도 스스로 걸러야 하지 않냐고 묻는다. 그러나 질서를 ‘관리’하는 일과 무엇이 범죄인지 ‘판정’하는 일은 다르다. 플랫폼은 실명 인증과 다계정 차단, 판매액 제한으로 이미 질서를 관리하고 있지만, 특정 게시글이 처벌 대상 범죄인지 확정하는 일은 국가 몫이다. 중고거래 앱에서 사기가 벌어져도 우리는 플랫폼에 범인을 재판하라고 하지 않는다. 플랫폼이 이용자를 범죄자로 단정해 삭제하기 시작하면, 그 칼끝은 평범한 사용자에게도 향한다.
개정안의 조문 구조가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린다. 이대로라면 플랫폼은 위법성을 스스로 판정하고 유사 게시물까지 감시·삭제하는 준(準)수사기관이 된다. 그 판단엔 범죄 성립의 핵심인 상습·영업성이 빠져 있고, 오판으로 정상 판매글이 삭제돼도 되돌릴 이의·복원 절차와 면책 규정이 없다. ‘정가 재판매만 허용하면 되지 않냐’고도 한다. 그러나 상위 법률이 벌하는 것은 표를 매집해 되파는 조직적 암표이지, 사정이 생겨 자기 표를 시세에 맞춰 내놓는 개인이 아니다. 그런데 시행령안은 상습·영업 요건을 덜어낸 채 개인의 단발성 거래까지 삭제 대상에 올린다. 법이 벌하지 않기로 한 행위를 하위 법령이 뛰어넘는, 위임의 한계를 벗어난 설계다.
과도한 웃돈은 개인을 범죄자로 모는 대신 가격 상한으로 억제하는 편이 낫다. 오해는 걷어내고 싶다. 스타트업 업계는 규제 회피를 주장하지 않는다. 플랫폼은 정부의 감시망 안에서 판매가 상한, 다계정 차단, 매크로 필터, 데이터 공유와 과세 협조의 책임을 기꺼이 져야 한다. 다만 위법성에 대한 최종 판정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몫이다.
암표 근절과 건강한 2차 거래 시장 조성은 양자택일이 아니다. 정부가 판단하고 플랫폼이 적극 협조하는 시스템으로 둘 다 실현할 수 있다. 스타트업 업계는 규제 밖이 아니라 정부의 감독 아래에서 이 길을 함께 걷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