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서울경제] 제주 빈집 되살린 스타트업, 이번엔 ‘창업가 마을’ 조성 실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10주년 행사 참가자들이 17일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에서 스타트업 ‘다자요’가 재생할 예정인 빈집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김태영 기자
제주 서쪽의 중산간의 소멸 위기 마을 조수리. 406가구밖에 살지 않는 한적한 동네 한켠, 빈집의 녹슨 자물쇠를 풀고 철문을 열어젖히자 덩굴식물로 뒤덮인 돌담 진입로가 나타났다. 안거리(안채)에 들어서자 한지가 다 뜯겨 뼈대만 남은 문, 바닥에 흩어진 지푸라기와 포대가 방치된 시간을 짐작케 했다. 이 집은 농림축산식품부 ‘2026년 농촌소멸대응 빈집재생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창업가들을 위한 정주·업무 공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사업 기획을 맡은 빈집재생 스타트업 ‘다자요’의 남성준 대표는 “총 10채의 빈집을 숙소, 창업가 주택, 카페형 오피스, 세탁방·목욕탕으로 재탄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17일 창립 1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스타트업 대표 20여 명을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로 초청해 일대의 다자요 빈집 재생 현장을 공개했다. 다자요는 방치된 농어촌 빈집을 집주인에게 장기 무상임대해 근사한 숙소로 개조·운영하는 스타트업이다. 농어촌 빈집이 늘어나고 있지만 철거도, 관리도 어렵다는 사실에 착안해 2015년 설립됐다. 2019년 농어촌민박 거주 요건을 어겼다는 지적에 사업을 중단했다가 이듬해 9월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를 받아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다자요의 손을 거쳐 숙소로 재탄생한 제주의 빈집은 총 11채, 누적 이용객은 3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남성준(오른쪽) 다자요 대표가 17일 제주도 제주시 한경면 숙소 ‘고산도들집’에서 코리아스타트업포럼 10주년 행사 참가자들에게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코리아스타트업포럼
다자요가 조수리를 창업가 마을로 재생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렇게 쌓은 역량과 경험이 바탕이 됐다. 다자요는 10채의 빈집을 연결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스타트업 근무자들이 ‘워케이션’으로 제주에 방문해 카페형 오피스에서 일하고, 숙소에서 나오는 침구·수건은 세탁방에서 세탁해 추가 매출을 내는 식이다. 남 대표는 “단순히 관광 숙박만 넣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신경을 썼다”며 “한경면에는 목욕탕이 없어 75세 이상 주민은 무료 사용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부 숙소는 마을 재생 취지에 공감한 유명인을 기획 단계에 참여시켜 팬들의 방문을 촉진하는 효과도 노리고 있다. 현재까지 배우 류승룡, 권유리 등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현장에 동행한 류 씨는 “2019년 다자요가 어려움을 겪었을 때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다”라며 “빈집을 잘 활용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자요의 숙소인 ‘하천바람집’은 류 씨의 소장품, 시상식 트로피 등이 배치된 것으로 입소문이 나 3년간 평균 가동률이 63.1%에 달한다. 제주 농어촌민박 평균(32%)보다 두 배 높다. 이날 방문한 또 다른 숙소 ‘고산도들집’은 가구 브랜드 일룸이 모든 가구를 무상으로 제공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불특정다수가 찾는 다자요 숙소가 일종의 쇼룸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이뤄진 협업이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10주년 행사 참가자들이 17일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에서 스타트업 ‘다자요’가 리모델링한 숙소 ‘고산도들집’을 구경하고 있다. 사진 제공=코리아스타트업포럼
성공 사례가 쌓이며 정부도 다자요 모델의 제도화에 시동을 걸었다. 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 등 4개 부처는 지난해 발표한 ‘범정부 빈집 종합관리계획’에서 농어촌 빈집재생민박업 제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다만 남 대표는 제도화의 밑거름을 제공한 선도 기업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남 대표는 “실증 비용과 부담은 기업이 떠안는 반면 그 성과는 국가의 제도 자산이 된다”며 “실증 기간 쓴 비용도 연구개발비로 일부 인정하는 식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