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서울경제] 창업자 두려움에 정부가 답해야 할 때
올해 2월 금융위원회가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 인가 결과를 발표한 날 전화가 빗발쳤다. 당사자인 루센트블록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에서 규제 샌드박스로 사업을 하거나 준비 중이던 창업자들이었다. 그들의 질문은 하나였다. “우리도 결국 저렇게 되는 거 아닌가?”
창업자들은 늘 법과 제도 때문에 사업을 그르칠까 봐 두려움을 안고 산다. 규제 샌드박스는 국가가 스타트업 생태계를 살리겠다며 내건 약속이다. 이는 ‘법과 제도가 없으니 창업자가 먼저 시장을 검증하라. 검증되면 제도를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창업자는 그 약속을 믿고 위험을 감수하며 인생을 건다.
루센트블록은 이 같은 약속을 성실히 이행한 기업이다. 2018년 대전에서 창업해 2021년 국내 최초로 부동산 수익증권 거래 플랫폼의 혁신금융 서비스 지정을 받았고 이후 조각투자 플랫폼 ‘소유’를 4년 넘게 운영했다. 금융 사고 한 건 없이 이용자 50만 명, 발행·유통 증권 300억 원을 쌓았다. 그러나 토큰증권(STO) 제도가 만들어지는 순간, 루센트블록은 제도 밖으로 밀려났다. 예비 인가를 받은 것은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었다. 8년간 시장을 검증한 스타트업은 지워지고 검증에 참여조차 하지 않은 기관이 그 시장을 차지했다.
탈락 사유로 알려진 것은 자기자본과 자금 조달 계획이다. 심사위원의 채점을 시비하려는 것이 아니다. 자기자본을 놓고 한국거래소와 겨뤄 이길 스타트업은 국내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려 한다. 이 항목이 심사의 중심에 놓이는 순간, 승부는 이미 끝나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금융은 특허로 지킬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상품 구조는 공시되는 순간 공개되고 사업 모델은 인가 서류에 고스란히 담긴다. 혁신금융 서비스에 ‘배타적 운영권’이라는 보호 장치가 있다지만 정작 시장이 제도화되는 결정적 국면에서는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했다. 위험은 창업자가 지고 과실은 자본이 거두는 규칙이라면 결코 공정한 경기가 아니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지난 10년간 창업가들이 좌초하는 장면을 여러 번 지켜봤다. 모빌리티도 리걸테크도 기존 직역과 부딪혀 성장의 시간을 통째로 잃었다. 그러나 이는 최소한 ‘충돌’이었다. 반대하는 상대가 있었고 논쟁이 있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국가가 스스로 설계한 제도 안에서 창업자가 밀려났다. 싸움에서 지는 것은 다음 도전자에게 전략이라도 남기지만 절차에서 지워지는 것은 도전 자체를 단념시킨다. 검증에 성공하고도 배제된다면 누가 제도를 믿고 도전하겠는가.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위에 건의한 것은 루센트블록에 인가를 주라는 것이 아니다. 두 컨소시엄이 본인가를 신청하는 지금, 추가 예비 인가 신청 기회만이라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회를 줘도 심사는 여전히 엄격할 것이고 다시 탈락할 수도 있다. 실증으로 제도화의 문을 연 기업에 그 한 번의 기회조차 허용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금융위의 결정은 표면적으로 한 기업의 인가 문제지만 본질은 규제 샌드박스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정부를 믿고 가장 먼저 뛰어든 사람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지금 수많은 창업가가 지켜보고 있다. 창업자들이 끝까지 국가를 믿고 도전할 수 있도록 마지막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